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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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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영화는 1896년 뤼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가 소개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뉴스 단편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를 이루었고, 1914년 《아말리아》가 최초의 자국 제작 장편 영화로 제작되었다. 1930년대 황금기를 거치며 탱고 영화가 인기를 얻었지만, 후안 페론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검열과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면서 제약을 받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하여 국제 영화제에서 아르헨티나 영화를 알렸고, 1983년 민주화 이후에는 군사 독재 시기의 억압을 다룬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엘 시크레토: 그들의 눈동자》가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아르헨티나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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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영화
영화 정보
1961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여배우들: 이사벨 사를리, 올가 수바리, 티타 메렐로, 미르타 레그란드.
1961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여배우들: 이사벨 사를리, 올가 수바리, 티타 메렐로, 미르타 레그란드.
스크린 수 (2011년)792개
인구 10만 명당 스크린 수 (2011년)2.2개
주요 배급사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23.7%
월트 디즈니 컴퍼니 22.4%
워너 브라더스 16.2%
평균 영화 제작 편수 (2005–2009년)52편
총 관객 수 (2012년)46,386,856명
아르헨티나 영화 관객 수 (2012년)4,347,481명 (9.4%)
총 박스 오피스 (2012년)ARS 1,305,332,697
아르헨티나 영화 박스 오피스 (2012년)ARS 111,205,543 (8.5%)
관련 정보
참고 자료아르헨티나 영화 산업 위기: 현지 업계, "파괴적인" 개혁에 대한 우려; 알모도바르, 이냐리투, 쥐스틴 트리에 등이 국가 영화 지원 폐지 계획을 비판하는 서한에 서명
아르헨티나의 극우 지도자, 국가 영화 지원 삭감 계획 철회

2. 역사

아르헨티나 영화의 역사는 1896년 프랑스 사진작가 외젠 피가 뤼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를 아르헨티나에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9] 초기에는 뉴스 단편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마리오 가요는 최초의 극영화 《도레고의 처형》(1908)을 만들었다. 초기 영화는 아르헨티나 역사문학 작품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1930년대에는 최초의 유성 영화 《아디오스 아르헨티나》(1930)가 제작되었고,[11] 무비톤 사운드 시스템 도입으로 영화에서 목소리와 음악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11] 이 시기에는 탱고 영화가 인기를 끌었으며, 아르헨티나 소노 필름과 루미톤 등 영화 스튜디오들이 설립되었다.[11]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에 아르헨티나 영화 산업은 연평균 42편의 영화가 제작되며 정점에 달했다.

미국의 영화의 인기와 후안 페론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의 검열 강화로 인해 아르헨티나 영화의 성장이 제한되기도 했다.[11] 1950년대 후반부터는 새로운 세대 영화 감독들이 등장하여 국제 영화제에 아르헨티나 영화를 선보였다.

1976년 군사 쿠데타 이후 영화 산업은 심한 검열을 받았으며,[21] 영화 제작자들은 가벼운 주제로 제한되었다. 1983년 민주주의가 도래하면서 아르헨티나 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더러운 전쟁 시기의 억압, 고문, 실종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나타났으며, 루이스 푸엔조의 《공식적인 이야기》(1985)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2. 1. 초기 (1896년 ~ 1920년대)

1896년, 프랑스 사진작가 외젠 피가 뤼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를 아르헨티나에 소개했다.[9] 1897년, 외젠 피는 최초의 아르헨티나 영화로 여겨지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제작했다.[10] 그러나 1896년에 이미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상영한 페데리코 피그너가 최초라는 논란도 있다. 초기에는 뉴스 단편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를 이루었다. 마리오 가요는 최초의 극영화 《도레고의 처형》(1908)을 만들었다.

《아말리아》(1914), 최초의 자국 제작 장편 영화.


초기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아르헨티나 역사문학 작품이었다. 호세 에르난데스의 가우초 시 《마르틴 피에로》에서 영감을 받은 《노블레사 가우차》(1915)와 호세 마르몰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아말리아》(1914)가 제작되었다. 1917년에는 이폴리토 이리고옌 대통령을 풍자한 단편 애니메이션 《엘 아포스톨》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2. 2. 황금기 (1930년대 ~ 1950년대)

1930년, 마리오 파르파뇰리가 연출하고 리베르타드 라마르케와 아다 코르나로가 출연한 최초의 유성 영화 《아디오스 아르헨티나》가 제작되었다.[11] 1931년에는 호세 A. 페레이라가 비타폰 사운드 시스템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 《무네키타스 포르테냐스》를 제작했다.[11]

1933년, 무비톤 사운드 시스템 도입으로 영화에서 목소리와 음악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11] 앙헬 멘타스티가 아르헨티나 소노 필름을, 엔리케 텔레마코 수시니가 루미톤을 설립하는 등 영화 스튜디오들이 설립되었다.[11]

루이스 마글리아 바르트가 연출한 최초의 디스크 없는 사운드 영화는 《¡탱고!》(1933)였다. 이 시기에는 아멜리아 벤스와 티토 루시아르도와 같은 많은 아르헨티나 스타들이 탄생한 탱고 영화 《댄싱》이 있었다. 이 시대의 다른 인기 배우로는 아이다 알베르티, 아르만도 보, 플로렌 델베네, 아르투로 가르시아 부르가 있었다. 리베르타드 라마르케가 주연한 《허니서클》과 니니 마샬이 주연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결혼》과 같은 영화들은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마누엘 로메로는 1930년대 중후반의 저명한 감독이었으며, 루이스 산드리니와 함께 코미디 영화에서 작업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돈 키호테 델 알티요》가 있다.

아르헨티나 영화 산업은 연평균 42편의 영화가 제작되던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에 정점에 달했다. 이 시대 영화는 대개 탱고를 소재로 했지만, 탱고가 없는 경우에도 겸손한 영웅과 부유한 악당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았다.[11] 이 영화들은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했으며, 후안 페론의 경제 정책의 주요 수혜자로 묘사했다. 이러한 영화들은 페론주의의 정치적 의제의 일부로 여겨졌다.[11]

미국의 영화의 인기가 높아지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압력, 후안 페론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의 검열 강화로 인해 아르헨티나 영화의 성장이 다소 제한되었다. 특히 알베르토 데 멘도사, 아르투로 가르시아 부르, 니니 마샬, 리베르타드 라마르케 등 많은 배우들이 박해를 피해 망명했다.[11]

2. 3. 새로운 물결 (1950년대 후반 ~ 1970년대)

1950년대 후반부터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세대 영화 감독들이 국제 영화제에 아르헨티나 영화를 선보였다. 이러한 감독들의 첫 번째 물결은 "귀족적 타락을 탐구"한 레오폴도 토레 닐손과 페르난도 아얄라, 데이비드 호세 코혼, 시몬 펠드만, 그리고 196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불안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인 《화덕의 시간》(La Hora de los Hornos, 1966–68)을 제작하기 시작한 페르난도 "피노" 솔라나스였다.[19] 이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를 휩쓴 혁명적 열기의 물결을 설명하기 위해 새롭고 오래된 영화 영상을 결합했다. 스페인 침략자부터 외세의 자금 지원을 받는 현대 군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인종 차별, 사회적 격변, 원주민 학살, 혁명적 반란의 여파로 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고찰한다. 이 뛰어난 다큐멘터리는 제3 영화 운동을 시작했으며 라틴 아메리카 영화를 국제적인 반열에 올렸다.

툴리오 데미첼리와 카를로스 슐리퍼와 같은 감독들이 등장하여 종종 직접 쓰고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적 스타일을 구축한 두 번째 세대는 호세 A. 마르티네스 수아레스, 마누엘 안틴, 레오나르도 파비오였다.

2. 4. 군사 독재 시기 (1976년 ~ 1983년)

1976년 군사 쿠데타 이후, 아르헨티나 영화는 군부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글레이저, 파블로 시르, 엔리케 후아레즈가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등 폭력적으로 단절되었다.[21] 영화 산업은 심한 검열을 받았으며, 영화 제작자들은 일반적으로 가벼운 주제로 제한되었다.

이 시기 엑토르 올리베라는 로베르토 코사의 희곡을 각색한 《할머니》(1979)를 제작했다. 이 암울한 코미디는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에 부담을 준 대외 부채 이자 지불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되었다. 군사 정권의 지지자였던 페르난도 시로는 중산층 신경증을 솔직하게 다룬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는 동료들의 고난에 무관심한 듯 보였고, 많은 동료들이 독재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를 떠나야 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를 동료들과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지만, 1981년 비극 《베니도 아 메노스》(쇠퇴)는 여전히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 5. 민주화 이후 (1983년 ~ 현재)

1983년 민주주의가 도래하면서 아르헨티나 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는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의 인기가 줄어들고, 더 심각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더러운 전쟁 시기의 억압, 고문, 실종 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영화들이 나타났다. 엑토르 올리베라의 ''웃긴 더러운 작은 전쟁''(1983)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필의 밤''(1986), 루이스 푸엔조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공식적인 이야기''(1985) 등이 대표적이다. "피노" 솔라나스의 ''탕고스, 가르델의 망명''(1986)과 ''남쪽''(1987), 알레한드로 도리아의 ''소피아''(1987)도 이 시기의 주요 작품이다.

망명과 향수를 주제로 다루거나, 은유와 암시를 통해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도 있었다. 알베르토 피셔만의 ''6월의 날들''(1985), 후안 호세 후시드의 ''아르헨티나에서 제작''(1986), 구스타보 모스케라의 ''다가올 미래''(1988) 등이 대표적이다.

마리아 루이사 벰베르그의 ''카밀라''(1984), 카를로스 소린의 ''왕과 그의 영화''(1985), 엘리세오 수비엘라의 ''남동쪽을 향한 남자''(1986)과 같이 논쟁적인 문학과 19세기 역사를 다룬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3. 주요 영화사


  • 알레프 프로덕시오네스
  • 아쿠아 필름
  • 아르헨티나 소노 필름
  • 아리에스 시네마토그라피카 아르헨티나
  • BD 시네
  • INCAA (국립 영화 및 시청각 예술 연구소)
  • 파타고닉 필름 그룹
  • 폴-카
  • EMB 엔터테인먼트, 코퍼레이션 / 콘트라쿨투라

4. 주요 영화인


  • 외젠 피: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로, 아르헨티나 영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앙리 르파주, 막스 글뤼크만과 함께 일했으며, 뤼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의 아르헨티나 데뷔를 이끌었다.[9] 1897년 고몽 영화사(Gaumont) 카메라를 사용하여 최초의 아르헨티나 영화 중 하나로 여겨지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제작했다.[10]
  • 앙리 르파주: 벨기에 출신으로, 외젠 피, 막스 글뤼크만과 함께 Casa Lepage에서 활동했다.
  • 막스 글뤼크만: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외젠 피, 앙리 르파주와 함께 Casa Lepage에서 활동했다.
  • 페데리코 피그너: 독일계 브라질인으로, 1896년 11월 24일 최초의 아르헨티나 영화 3편(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풍경을 담은 단편)을 상영했다.
  • 에우제니오 A. 카르디니: 초기 영화 감독으로, ''Escenas Callejeras''(1901)를 촬영했다.
  • 마리오 가요: 최초의 극영화인 ''도레고의 처형''(1908)을 만들었다.
  • 에르네스토 군체: 초기 다큐멘터리 감독.
  • 호세 A. 페레이라: 초기 영화 감독으로, ''팔로마스 루비아스''(1920), ''라 가우차''(1921),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시 오브 엔수에뇨''(1922) 등을 발표했다.
  • 훌리오 이리고옌: 초기 영화 감독으로, 1928년 ''알마 엔 페나''와 같은 영화를 발표했다.
  • 레오폴도 토레 닐손: 새로운 물결 영화 감독으로, ''함정 속의 손''(1961), ''마르틴 피에로''(1968) 등을 통해 아르헨티나 문학 고전을 재해석했다.
  • 페르난도 아얄라: 새로운 물결 영화 감독.
  • 페르난도 솔라나스: 제3 영화 운동을 이끈 감독으로, 다큐멘터리 《화덕의 시간》(''La Hora de los Hornos'', 1966–68)을 제작했다.[19]
  • 세르지오 레난: 영화 감독으로, 1974년 범죄 드라마 ''라 트레구아''("휴전")는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 오스발도 바이어: 영화 감독으로, 1974년 ''라 파타고니아 레벨데''를 제작했다.
  • 엑토르 올리베라: 영화 감독으로, ''할머니''(1979), ''웃긴 더러운 작은 전쟁(Funny Little Dirty War)'' (1983) 등을 제작했다.
  • 페르난도 시로: 영화 감독으로, 1981년 비극 ''베니도 아 메노스''("쇠퇴")는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 루이스 푸엔조: 영화 감독으로, 아카데미상 수상작 ''공식적인 이야기(The Official Story)'' (1985)를 제작했다.
  • 알레한드로 도리아: 영화 감독으로, ''장례식 대기(Esperando la carroza)'' (1985), ''소피아''(1987) 등을 제작했다.
  • 마리아 루이사 벰베르그: 영화 감독으로, ''카밀라''(1984)를 제작했다.
  • 카를로스 소린: 영화 감독으로, ''왕과 그의 영화''(A King and His Movie, 1985)를 제작했다.
  • 엘리세오 수비엘라: 영화 감독으로, ''남동쪽을 향한 남자(Man Facing Southeast)'' (1986)를 제작했다.
  • 사울로 베나벤테: 시노그래퍼.
  • 카를로스 지아니: 시노그래퍼.

5.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주요 인물 및 사건

1990년대 아르헨티나 영화는 사회 문제와 정치적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르사 버사''(1996)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빈곤층의 삶을, 브루노 스타냐로의 ''피자, 맥주, 담배''(1997)는 소외된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에두아르도 칼카뇨의 ''엘 센서''(1995)는 1970년대 영화 검열관 파울리노 타토를 다뤘고, 후안 J. 후시드의 ''바호 반데라''(1997)는 군사 훈련 시스템을 비판했다. 마르코 베키스의 ''가라지 올림포''(1999)는 독재 정권의 고문 감옥을, 후안 카를로스 데산조의 ''에바 페론''(1996)은 에바 페론을 복합적으로 묘사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는 ''여행''(1992)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적 상황을 조명했다.

5. 1. 우호적 인물

페론 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망명한 배우로는 리베르타드 라마르케와 니니 마샬이 있다.[19] 이들은 군사 독재에 저항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페르난도 솔라나스는 제3 영화 운동을 이끌며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제작하여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19]

5. 2. 비판적 인물

후안 페론은 영화 산업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여 검열과 탄압을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영화는 그의 이념을 전파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페론주의es 영화가 계속 제작되었고, 시네 데 바세와 같은 극좌 단체들이 등장했다.[20]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 이후, 영화 산업은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군부는 영화 제작자들을 살해하거나 실종시켰으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21] 이 시기, 많은 영화인들이 망명하거나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페르난도 시로는 군사 정권의 지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의 신경증을 솔직하게 파고들어 주목받았으나, 동료들의 고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5. 3. 주요 사건

1970년대 초, 아르헨티나는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정부의 탄압은 봉기와 테러로 이어졌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쳤다.[20] 1976년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는 영화 산업을 탄압하고 검열을 강화했다. 이 시기, 세 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가 군부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21]

군부 독재 시기(1976년~1983년)는 이른바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시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고문당하는 등 인권 탄압이 극심했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 영화는 엄격한 검열로 인해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있었지만, 일부 영화들은 암울한 현실을 풍자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엑토르 올리베라의 ''할머니''(1979)는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를 짓누르던 대외 부채 문제를 코미디 형식으로 다루었다.[22]

1983년 민주화 이후, 아르헨티나 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의 억압, 고문, 실종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루이스 푸엔조 감독의 ''공식적인 이야기''(1985)는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엑토르 올리베라의 ''웃긴 더러운 작은 전쟁''(1983)과 ''연필의 밤''(1986)도 이 시기 대표적인 작품이다.

1990년대에는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했다.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르사 버사''(1996)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빈곤층의 삶을, 브루노 스타냐로의 ''피자, 맥주, 담배''(1997)는 소외된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참조

[1] 웹사이트 Table 8: Cinema Infrastructure – Capacity http://stats.uis.une[...]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 2013-11-05
[2] 웹사이트 Table 6: Share of Top 3 distributors (Excel) http://stats.uis.une[...]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 2013-11-05
[3] 웹사이트 Average national film production http://www.uis.unesc[...] UNESCO Institute for Statistics 2013-11-05
[4] 웹사이트 Estadísticas Culturales http://sinca.cultura[...] Sistema de Información Cultural de la Argentina 2015-03-22
[5] 서적 Mexican cinema: reflections of a society, 1896–1980 https://archive.org/[...] 1982
[6] 웹사이트 Argentina – Cultura – Cine http://www.argentina[...] Argentina.ar 2011-10-16
[7] 웹사이트 Argentina Industry Crisis: Local Biz Fearful Ahead Of "Devastating" Reforms; Almodóvar, Iñárritu, Justine Triet & More Sign Letter Condemning Far Right Leader’s Plan To Scrap State Film Funding https://deadline.com[...] Deadline
[8] 웹사이트 Argentina’s Far-Right Leader Scraps Plan To Gut State Film Funding https://deadline.com[...] Deadline
[9] 웹사이트 Argentine Cinema History (1896–1945) https://surdelsur.co[...] 2014-07-28
[10] 웹사이트 The movie industry in Argentina http://www.travelsur[...] Travelsur.net 2015-01-29
[11] 서적 The New Cultural History of Peronism: Power and Identity in Mid-Twentieth-Century Argentina https://books.google[...] Duke University Press Books
[12] 서적 Latsploitation, Exploitation Cinemas, and Latin America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10-26
[13] 웹사이트 A 50 años del debut de Isabel Sarli en el cine http://www.perfil.co[...] 2013-10-19
[14] 웹사이트 La noche en que nació el mito http://edant.clarin.[...] 2013-10-19
[15] 웹사이트 El tronar de la Coca en Mendoza http://www.losandes.[...] Los Andes 2013-10-19
[16] 웹사이트 La saga de los Bó http://rollingstone.[...] 2013-10-19
[17] 웹사이트 La Coca y nada más http://www.pagina12.[...] 2013-10-20
[18] 뉴스 Stardom Follows Nude Movie Bath https://news.google.[...] 2013-10-26
[19] 웹사이트 http://www.argentina[...]
[20] 서적 Film History An Introduction McGraw-Hill Company Inc.
[21] 웹사이트 Politics and Poetics: A Brief History of Argentine Documentary Cinema | International Documentary Association http://www.documenta[...] Documentary.org 2015-01-29
[22] 문서 http://dspace.dial.p[...]
[23] 웹사이트 http://lilt.ilstu.ed[...]
[24] 웹사이트 http://www.newint.or[...]
[25] 웹사이트 La Ciénaga https://www.criterio[...] The Criterion Collection 2017-10-30
[26] 웹사이트 La Cienaga Movie Review & Film Summary (2001) http://www.rogereber[...] Ebert Digital LLC 2017-10-30
[27] 웹사이트 Family tensions fill risky 'La Cienaga' https://www.chicagot[...] Tronc 2017-10-30
[28] 웹사이트 La Cienaga (2001) https://www.rottento[...] Fandango 2017-10-30
[29] 웹사이트 "La Ciénaga": What's Outside the Frame https://www.criterio[...] The Criterion Collection 2017-10-30
[30] 웹사이트 Blessed Restraint https://www.nytimes.[...] 2017-10-30
[31] 웹사이트 La Femme sans tête http://www.telerama.[...] Publications de la Vie Catholique 2017-10-30
[32] 웹사이트 Zama review – Lucrecia Martel emerges from the wilderness with a strange, sensual wonder https://www.theguard[...] 2017-10-30
[33] 서적 Mexican cinema: reflections of a society, 1896-1980 http://books.google.[...] 1982
[34] 웹사이트 Argentina - Cultura - Cine http://www.argentina[...] Argentina.ar 201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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